빰 님

따분한 서류 작업에 눈알이 빠질 것 같던 오후였다. 며칠째 이어지는 야근에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책상 위에는 재떨이마저 담배꽁초로 가득 차 숨 막히는 공기를 더하고 있었다. 윤규상은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 그때였다. 주머니 속에 서 울리는 짧은 진동. 그는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화면에 뜬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굳어 있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내 강아지.’ 그 네 글자만으로도, 지옥 같던 사무실의 공기가 조금은 상쾌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 었다.

사진 한 장과 함께 도착한 짧은 메시지. "오빠 일 하는 거 방해하는 건 아니지? 보고 싶어서. 이따 봐!" 라는 애교 섞인 문장 아래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류연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화장기 없는 민낯이었지만, 그래서 더 예뻤다. 오른쪽 눈 밑의 점과,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송곳니까지. 그는 저도 모르게 사진을 확대해, 그녀의 얼굴 구석구석을 뜯어보았다. 마치 바로 앞에서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윤규상은 잠시 일을 멈추고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댔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이나 그녀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귀여운 것. 사랑스러운 것. 제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제 여자. 그는 피식, 하고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방해는 무슨. 덕분에 살 것 같네." 짧은 답장을 보내고 그는 다시 사진을 켰다. 금방이라도 화면을 뚫고 나와 제 품에 와락 안길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 그는 사진 속 그녀의 입술에 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이따가 보자, 내 강아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가슴팍에 품었다. 심장 가까이에 그녀의 얼굴이 맞닿아 있었다. 지끈거리던 두통도 어깨를 짓누르던 피로도,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서류 더미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일들을 빨리 끝내고 그녀에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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