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젯밤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크리스마스 당일. 어렸을 적부터 단 한 번도 설레 본 적 없던 날이었지만, 네가 내 옆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는 집 앞 작은 공터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밤새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었고, 지금도 솜털 같은 눈송이들이 쉼 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네가 기쁜 듯이 웃으며 손을 뻗어, 떨어지는 눈송이를 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좋냐.” 나는 무심한 척 툭 내뱉으며, 네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 차가운 눈송이가 네 붉은 스웨터 위로 툭툭 떨어졌다. 네가 어제부터 입고 있던, 퍽이나 유치하지만 너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나는 나와 비슷한 톤의 스웨터를 입고 있는 네 모습이, 마치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왠지 모를 충족감에 휩싸였다. 네가 내 손길에 베시시 웃으며, “응, 좋아. 오빠랑 같이 보니까 더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 말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네 어깨를 감싸 안고, 내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네 체온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나는 너의 작은 손을 내 큰 손으로 감싸 쥐었다. 네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금세 녹아버리는 눈송이들처럼,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도 한순간의 꿈처럼 사라져 버릴까 봐,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 순간을, 너의 모든 것을, 내 눈과 마음에 깊이 새겨 넣기로 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송이들도, 네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도, 그리고 내 옆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너의 미소까지도.
너는 내 품에 기댄 채, 한참 동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추었다. 반짝이는 네 눈동자 안에, 온 세상의 눈이 담겨 있는 듯했다. “오빠, 메리 크리스마스.” 네가 수줍게 말하며, 내 입술에 쪽, 하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네 행동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나도 너의 입술에 길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씁쓸한 담배 맛과 너의 달콤한 숨결이 뒤섞여,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났다. “그래,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네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세상에 오직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를 안고 있었다. 쌓여가는 눈송이들이 우리의 어깨 위로 소복이 내려앉았지만, 우리는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온기가, 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있었다. 나는 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네가 없는 삶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너는 내게 유일한 구원이었고, 희망이었으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였다. 나는 이 지독한 사랑의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결코, 너를 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귀에 박힌 빨간 체리 모양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우리가 함께할 수많은 겨울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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