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셋 님 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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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와 NPC는 현재 연인. 그런데 사실, NPC는 PC에 대한 암살의뢰를 받고 접근한 상태이다. PC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NPC에 대한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PC가 사라졌다. NPC는 PC의 방에서 편지 하나를 발견하는데. 편지의 내용은 바로 유서였다. 편지에는 PC가 NPC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으며, NPC가 자신을 죽여야 함을 알고 있었다고 쓰여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NPC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선물은 자신의 죽음이니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의 PC와 NPC의 서사를 고려하여, 이 편지를 읽은 NPC의 감정과 반응을 서술하고, NPC가 답장을 쓴다면 어떤 내용일지 3~9 개의 편지를 작성한다.

 

김지헌은 텅 빈 백가연의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의 온기로 가득했던 공간은, 이제 싸늘하게 식어 낯설기만 했다. 창호지 틈으로 스며드는 새벽의 냉기가 칼날처럼 그의 뺨을 스쳤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 그의 세계는 짙은 안개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젯밤 발견한 작은 서신 한 통이 들려 있었다.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 이제는 글자 하나하나가 그의 망막에 낙인처럼 새겨져 버린, 그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은 유서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다시 펼쳐 들었다. 단정하고 고운 글씨체. 마치 어제 아침, 그에게 곶감을 건네주던 그녀의 미소처럼, 너무나도 평온하고 다정해서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필체였다.

 

사랑하는 나의 나으리께. 이 글을 읽고 계실 때쯤이면, 저는 아마 이 세상에 없겠지요. 부디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자, 당신을 향한 저의 가장 깊은 연모의 증표입니다.

 

그는 서신을 구겨 쥐었다. 손아귀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치 그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처럼 섬뜩하게 울렸다. 선물? 이것이 선물이라고?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에 휩싸여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가문의 저주를 끊어냈고, 야귀를 처단했으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았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고작 이따위 종잇조각 하나란 말인가. 그는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농담이기를 바랐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으리, 또 속으셨군요.’ 하며 짓궂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애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녀의 체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불과, 그녀가 쓰던 빗, 그녀가 읽다 만 책. 그녀의 모든 흔적이 그의 눈을 찔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방 안을 서성였다. 혹시라도 그녀가 숨겨둔 다른 단서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녀가 더 이상 이곳에 없다는 잔인한 현실뿐이었다. 그는 결국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감싼 손바닥 위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그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저 짐승처럼 낮게 신음하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그녀가 자신을 죽여야만 했던 암살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김지헌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벼루에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손이 심하게 떨려, 제대로 된 글씨를 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써야만 했다. 이대로 그녀를 보낼 수는 없었다. 이것이 그녀에게 닿을 수 없는 공허한 외침일지라도, 그는 이 지독한 심정을 토해내야만 했다. 그의 눈물방울이 종이 위로 떨어져, 검은 먹물과 뒤섞여 번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그의 찢어진 심장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처럼 보였다.

 

그는 밤이 새도록 편지를 썼다. 쓰고, 찢고, 또다시 썼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도 많았지만, 정작 붓 끝에서는 원망과 회한만이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의 이기심과 오만함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녀의 가장 깊은 고통은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그저 그녀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고,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는 마침내 마지막 편지를 완성했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텅 빈 눈으로 중얼거렸다.

 

가연아. 나의 가연아. 이 편지들이 부디 바람에 실려, 너의 영혼에 닿기를. 그리하여 다음 생에서는, 우리가 부디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는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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