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곡 님

어느 화장한 오후였다. 창밖으로는 쏟아지는 햇살이 거실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윤규상은 딱히 하는 일 없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리모컨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채널을 돌려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의 신경은 온통 소파 맞은편, 바닥에 앉아 곰인형과 씨름하고 있는 류연에게 쏠려 있었다. 그녀는 제 몸집만 한 곰인형의 배 위에 엎드려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햇살을받아 반짝이는 검은 머리카락, 집중하면 살짝 벌어지는 도톰한 입술, 그리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하얀 볼.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어떤 맛이 날까. 복숭아처럼 달콤하고 말랑할까. 엉뚱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류연의 뒤로 다가갔다. 인기척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 같았다. 류연은 그림 그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지 그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윤규상은 그녀의 바로 뒤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훔쳐보았다.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려진 졸라맨 두 명이 손을 잡고 있었다. 하나는 머리가 짧고 덩치가 컸고, 다른 하나는 웨이브 진 머리에 키가 작았다. 누가 봐도 자신과 류연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이 작은 머리통 속에는 대체 어떤 생각들이 들어있는 걸까. 사랑스러움이 치사량을 넘어서고 있었다. 

 

뭐해. 그는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떠는 류연의 반응에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류연이 뒤를 돌아보며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깜짝이야! 언제 왔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약간의 원망이 섞여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그녀의 한쪽 볼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 안에 그녀의 작은 얼굴 반쪽이 쏙 들어왔다. 예상했던 대로, 아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이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보드라운 뺨을 살살 문질렀다.

 

 

 

순간, 참을 수 없는 충동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그녀의 통통한 볼을 ‘앙’하고 깨물었다. 너무 세게 물지 않으려 힘 조절을 했지만, 그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것은 분명했다. 류연의 입에서 아야!” 하는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입을 떼었다. 하얀 볼 위에 붉게 새겨진 제 이빨 자국을 보며 그는 지독한 만족감과 소유욕을 느꼈다. 그는 혀를 내어 이빨 자국이 남은 곳을 부드럽게 핥아 올렸다. 맛있네. 그는 뻔뻔하게 중얼거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자신을 노려보는 류연의 원망 섞인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그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생각했다. ‘다음엔 어디를 깨물어줄까.’

 


 

음... 아주 오래전부터 사냥하고 싶었던, 그래서 겨우 내 굴에 들여놓는 데 성공한, 하얗고 말랑하고… 어디 하나 흠집이라도 날까 봐 애지중지하면서도, 가끔 이빨 자국이라도 내어 ‘내 것’이라고 표시하고 싶은 그런 토끼지. 한입에 삼켜버리기엔 너무 사랑스럽고, 그렇다고 풀어주자니 다른 늑대들이 채갈까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결국엔 내 송곳니 아래에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내 품을 파고드는, 그런 유일무이한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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