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 님 OOC
OOC: 잠시 역할극 중단. 어느날,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한 Char와 User. User는 참지 못하고 Char 몰래 개그맨 공채 시험에 Char의 지원 서류를 제출하고... 며칠 뒤 Char의 핸드폰으로 개그맨 공채시험 서류심사에 통과했다는 회신이 도착한다. Char의 감정과 반응, 행동 등을 그동안의 서사와 Char의 성격, User와의 현재 관계, 유저노트를 반영하여 '코믹하게' 서술한다. 추가로 결국엔 Char가 오디션에 참석할지 말지, 참석한다면 어떤 개그를 준비해갈지, 거절한다면 어떤 사유로 거절할지에 대해 에필로그로 마무리한다.
“... 뭐?”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무의미한 음절에 가까웠다. 며칠 전 그 사소한 말다툼 이후로 잔뜩 삐져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않던 류연이 내 핸드폰을 훔쳐봤다는 사실보다, 그 핸드폰으로 벌인 짓이 내 상식의 범주를 아득하게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KBX 개그맨 공채] 서류 심사 합격. 축하드립니다. 윤규상 님. 최종 오디션 일정… 씨발. 나는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것이라고, 이건 그저 단체로 발송된 스팸 문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몇 번을 다시 확인해도, 그 엿 같은 문구는 사라지지 않고 망막 위를 둥둥 떠다녔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쥔 채, 소파에 인형처럼 앉아 눈알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는 류연을 노려보았다. 저 조그만 머리통을 열어서, 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야, 류연.” 내 목소리는 분노로 인해 지하실 바닥처럼 낮고 축축하게 깔려 있었다. “이거… 네가 한 짓이냐?” 내 질문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아주 해맑게. 악의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순수한 표정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 계집애는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내가 누군가. 윤규상이다. 뒷골목에서 구르며 잔뼈가 굵었고, 지금은 남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사채업자. 내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웬만한 양아치들은 오줌을 지리며 도망간다. 그런 내가, 개그맨? 씨발, 장난쳐? 나는 허, 하고 기가 막힌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지. 그렇지?” 내 말에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품에 안고 있던 토끼 인형 뒤로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빠… 웃기게 생겼잖아.” 그 한마디에, 내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성큼성큼 녀석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쥔 손으로 녀석의 볼을 꾸욱 잡아 늘렸다. “뭐? 내가, 뭐가 어째?” 녀석은 내 손아귀에 잡힌 채로, 옹알이하듯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제대로 된 문장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녀석의 볼을 잡은 채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야, 류연. 너 오늘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엉? 내가, 개그맨?” 나는 ‘개그맨’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며, 녀석의 볼을 더욱 세게 잡아당겼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억울하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마치, ‘왜? 오빠는 재능 있는데.’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더욱더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녀석의 볼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화를 내봤자, 이 철없는 계집애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더 신나서 날뛰겠지.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이 엿 같은 오디션을, 정말로 가야 하는 건가. 아니, 애초에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거지? 이건 전부 류연, 저 망할 계집애 때문이다. 나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웬수를 어떻게 구워삶아야, 내 인생에서 ‘개그맨’이라는 흑역사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
개그맨 윤규상의 탄생, 혹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엿 같은 오디션에 갔다. 물론, 순순히 내 발로 간 것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말도 안 하고, 심지어는 잠도 안 자고 버티는 류연의 끈질긴 시위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디션에 가지 않으면, 자기는 평생을 그렇게 살 거라고 협박하는 녀석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디션 당일. 나는 류연이 골라준,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오빠, 이거 입으면 무조건 합격이야!’ 라고 말하며 녀석이 내민 옷은, 몸에 꽉 끼는 분홍색 스팽글 재킷과 나팔바지였다. 씨발. 나는 차마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디션 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였다. 심사위원들 앞에서는, 류연이 밤새도록 내 머릿속에 주입시킨 ‘웃긴 표정 3종 세트’를 기계적으로 선보였다. 입을 찢어지게 벌리고 눈을 뒤집는 것, 코를 돼지처럼 만들고 혀를 날름거리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 볼에 바람을 가득 넣어 터뜨리는 것. 씨발. 내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처음에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내 귓가에 울리는 장송곡처럼 들렸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류연이 써준 대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류연이 평소에 나누던 대화를, 류연의 시점에서 각색한 만담이었다. 내가 얼마나 무뚝뚝하고, 얼마나 멍청하며, 또 얼마나 류연에게 쩔쩔매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여러분! 제 남자친구는요, 생긴 건 이렇게 험악해도 사실은 바보랍니다!” 나는 두 손을 활짝 펼치며,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목소리로 외쳤다. 객석, 아니 심사위원석에서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듯한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오디션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방송국 밖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손에는, 최종 합격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나는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 멀리서 류연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내 손에 들린 합격 통지서를 보더니,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다. “오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오빠는 역시 천재야!” 녀석의 해맑은 웃음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씨발, 좆같지만… 네가 좋다면, 그걸로 된 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내 인생에 ‘개그맨’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