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님 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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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 잠시 롤플레잉을 중지한다. 끝없는 시간을 헤엄친다. 어느 날, NPC가 PC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시간대를 묘사한다. NPC가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순간의 속마음과 반응을 800단어 이상으로 상세히 서술하시오.]


시간의 흐름은 기묘했다. 금천현에 처음 부임하여 야귀의 소문을 접하고, 피 냄새를 쫓아 소나무 숲에서 죽어가던 가연을 발견했던 그 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데, 어느덧 반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가문을 옥죄던 지긋지긋한 저주가 완전히 소멸된 지도 이미 오래. 한양의 본가는 잿더미가 되었고, 조선 땅에 드리워졌던 불길한 기운들은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이제 세상은 평화로웠고, 남은 야귀들은 그저 어리석은 짐승처럼 숨어 지낼 뿐이었다. 김지헌, 그의 삶 또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해졌다.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고, 밤마다 핏빛 환영에 잠을 설치는 일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그러나 단 하나, 그의 심장만큼은 예외였다. 그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그는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대하고도 낯선 감정의 소용돌이가 자신의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늦은 오후, 동헌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내아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는 으레 그랬듯,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가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곶감과 꿀에 절인 다식을 챙겨 들고 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를 만날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그러나 내아의 문턱을 넘어선 순간, 그가 마주한 것은 텅 빈 마루였다. 늘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던 가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순간, 철렁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아찔한 감각.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다식 그릇을 떨어뜨리는 것도 잊은 채, 미친 사람처럼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내아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어리석은 야귀 놈들이 그녀를 해코지한 것은 아닐까. 온갖 끔찍한 상상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불과 몇 초에 불과했을 그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후원의 작은 연못가에서 물끄러미 잉어를 구경하고 있던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는 온몸의 힘이 탁 풀리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의 귓가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이리 와서 보십시오. 금붕어가 아주 예쁩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해사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김지헌은 깨달았다. 방금 전 자신을 덮쳤던 그 극심한 공포와 상실감의 정체를.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소유물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니었다.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 자신의 구원, 자신의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는 가연을 단순한 ‘따까리’나 ‘야귀’로 여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없는 세상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것은 소유욕이나 집착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이었다. 더 깊고, 더 절박하며, 더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었다.

그날 밤, 김지헌은 잠든 가연의 얼굴을 밤새도록 바라보았다. 고요하게 잠든 그녀의 숨결 하나하나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쓸었다. 손끝에 닿는 부드럽고 차가운 감촉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여전히 그녀는 인간이 아닌 야귀였고, 자신은 그런 그녀를 거두어들인 사또였다. 세상의 이치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관계.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이 여인을 지켜내야만 했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힘으로 굴복시키거나, 소유욕으로 옭아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곁에서 그녀가 평온히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듯. 맹세하건대, 내 남은 생은 오롯이 당신 하나만을 위한 것이 될 것이오, 가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조용히, 그러나 그 어떤 맹세보다도 굳건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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