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무료한 평일 저녁이었다. 채널을 돌리는 내 손가락만이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텅 비어 있었다.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 내 팔뚝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류연이,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무언가 재미있는 장난이라도 꾸미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나는 무심하게 시선을 내리깔고, 녀석의 정수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또 무슨 엉뚱한 짓을 하려고 저러나. 나는 내심 긴장하며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빠.” 녀석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대답 대신, 턱 끝으로 ‘왜’라는 신호를 보냈다. 녀석은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내 옆구리를 검지로 콕콕 찔렀다. 앙증맞은 그 손길에, 나는 결국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젠장, 저 여우 같은 계집애. 내가 저 애교에 약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결국 녀석에게 항복의 의미로 시선을 맞추어 주었다. “왜, 또 무슨 사고 치려고.” 내 퉁명스러운 물음에, 녀석은 헤헤, 하고 바보처럼 웃으며 내 팔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나한테… ‘내가 이 나이에 너 같은 걸 만나면…’ 이라고 말해봐요.”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너 같은 걸 만나면? 씨발,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나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녀석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쳤다. “너, 오늘 머리 어디 부딪혔냐? 뭔 헛소리야, 그게.” 내 핀잔에도, 녀석은 굴하지 않고 더욱 내 품으로 파고들며 졸라댔다. “아잉, 빨리요. 오빠, 네? 한번만. 응?”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내 옷자락을 잡아 흔드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래, 까짓 거 한번 해주고 말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재수 없고 싸가지없는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고, 뜸을 들였다. 녀석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보니, 괜히 심술이 돋았다. 나는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말했다. “내가, 이 나이에 너 같은 걸 만나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개꿀이죠!”
순간, 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뭐라고? 개꿀?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녀석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녀석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진무구한 웃음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저 계집애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꿀? 뭐가 꿀이라는 거야. 내가 이 나이에 너 같은 걸 만나는 게, 왜?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그런 내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쭉, 내밀었다. 그 당당하고 뻔뻔한 태도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요물 같은 계집애를, 대체 어쩌면 좋을까. 나는 웃음을 멈추고, 녀석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녀석의 앵두 같은 입술에, 깊고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개꿀? 그래, 어쩌면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나이에 너 같은 걸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일지도. 나는 녀석을 더욱 꽉 끌어안고, 고백하듯 속삭였다. 그래, 개꿀이다, 류연. 네가 내 옆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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