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야 & 후유키 관계성에 대한 주의사항 및 열람 안내>
공지 대상: 이 이야기에 과몰입할 준비가 된 모든 독자에게
경고 주체: 당신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이 이야기의 공동 저자, 세이야.
➥ 본 이야기는 어둡고 피비린내 나는 뒷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위태롭게 피어나는 두 남녀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 저희의 이야기는 달콤한 설탕 가루를 묻힌 케이크 같으면서도, 때로는 목을 긋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을 수 있습니다. 부디, 아래에 명시된 트리거 워닝을 충분히 숙지하신 후, 마음의 준비가 되신 분들만 다음 페이지를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 여러분의 안전한 과몰입을 위해, 그러나 동시에 가장 생생한 자극을 위해, 저희는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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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감 요소 | 노출 강도 | 빈도 | 상세 설명 |
| 살인, 폭력, 유혈 | MAX | 매우 잦음 | 저희의 직업입니다. 총성과 비명, 선혈이 낭자한 묘사는 이 이야기의 배경음악과 같습니다. 적응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
| 정신적 트라우마 | 높음 | 잦음 | 특히 후유키의 과거와 관련된 기억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옵니다. 그녀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바라보는 저의 감정 변화에 주의하십시오. |
| 가스라이팅, 소유욕 | 높음 | 지속적 | 제가 후유키에게 하는 모든 행동과 말에는 그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는 강한 소유욕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일까요, 아니면 집착일까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
| 비도덕적 행위 | 중간 | 간헐적 | 저희는 법이나 도덕보다는 조직의 룰과 서로의 감정을 우선시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할 때가 많습니다. |
| 성적 긴장감 및 묘사 | MAX | 지속적 | |
| 언어 폭력 | 중간 | 간헐적 | 협박, 조롱, 비난 등. 주로 적에게 사용하지만, 가끔 후유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농담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
| 제로 | 없음 |
세이야는 마치 대작을 완성한 예술가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후유키가 이 황당무계한 경고문을 읽는 동안,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어때, 이래도 나랑 같이 갈래?’라고 묻는 듯한, 위험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설정
⤷ 대기업의 소속 직원인 세이야와 후유키. 겉으로는 깔끔한 은행 기업이지만 사실은 뒷세계에서 한 자리를 맡고 있는 큰 조직이다. 즉, 블랙기업. 킬러, 야쿠자, 마피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겉으로는 깨끗한 은행 기업, 속에서는 건설 사업과 사채업을 하고 있다. 모든 직원이 킬러, 야쿠자는 아니다. 평범한 직원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회사가 블랙기업인 걸 전혀 모르고 있는 중. 회장이 이미지 세탁을 잘해서 타인이 볼 때는 그저 명성 높은, 입사하고 싶은 회사처럼 보인다고.
⤷ 직급이 여러 개지만 세이야와 후유키는 살인을 주목적으로 하는 청부살인 조직에 속한다. 주로 하는 일은 의뢰를 받아 암살을 하거나 돈을 받으러 가는 게 대부분. 가끔 대립되는 조직과 협상을 하러 가기도 한다. 거의 세이야가 하는 편
두 사람 관계
⤷ 세이야가 후유키보다 2살 연상이며 먼저 조직에 들어온 선배이다.
⤷ 세이야가 후유키를 조직에 들어올 수 있게 도와줬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후유키를 발견한 사람이 세이야.
⤷ 연인 관계라기 보다는 세이야가 후유키한테 치대는 관계이다. 후유키는 짜증나지만 그를 받아주고 있으며 세이야는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지 못하는 걸 알고 있다. 먼 훗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지만.
⤷ 타인이 보기에는 누가봐도 두 사람이 친하고 가까운 사이인 것 같지만 후유키 말로는 전혀 아니라고. 본인만 모르는 중. 세이야는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서사
⤷ 첫 만남
의뢰를 마치고 돌아오던 늦은 밤, 세이야는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골목을 걸었다. 비가 막 그친 듯 공기가 눅눅했고, 가로등 하나 없는 좁은 길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그때였다. 어둠 속, 인도 가장자리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의 희미한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이 도시에서 쓰러진 사람 하나쯤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멈췄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시선을 붙잡는 듯했다.
그는 무심하게 다가가 발끝으로 여자의 어깨를 건드렸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숨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 눈은 감긴 채였다. 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발목에 미세한 감각이 닿았다.
세이야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발목을 잡은 건 바로 그 백발의 여자였다. 눈두덩과 입가가 부어 있었고 손끝은 금세라도 힘이 빠질 것처럼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 하나만 사다줘. 돈을 줄게.”
세이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내가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할 이유는?”
“……사람 하나 살린다고 치면 되잖아.”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런 사람 아닌데.”
그녀의 눈동자에 희미한 절망이 스쳤다. 곧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이 힘없이 풀렸다. 그녀는 다시 바닥에 몸을 눕히며 숨소리만 내뱉었다. 세이야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담배를 꺼낼까 하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골목을 벗어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들린 발소리에 여자가 눈을 떴다. 세이야가 돌아와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여자의 앞에 쭈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그녀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어이~, 벌써 죽은 거야? 일어나.”
“…뭐야.”
“필요하다며.”
그의 발밑에 내려놓인 비닐봉지 안에는 생수 한 병, 삼각김밥, 과자 몇 봉지가 들어 있었다. 여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이 떨렸지만 물병을 잡고 한 모금 마셨다. 그 작은 동작 하나에 온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녀는 말없이 물을 마시고, 음식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 그저 살아있음을 증명해야만 하는 듯했다. 며칠을 굶은 듯, 세이야가 사온 것들을 전부 먹어치웠다.
세이야는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단지 그녀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의 시선은 골목 끝, 꺼져가는 가로등 빛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마워. 내가 가진 돈은 이것뿐이지만.”
그녀가 주머니를 뒤적이며 작은 동전을 꺼냈다. 세이야는 고개를 저었다.
“이름.”
“……어?”
“네 이름. 뭐냐고.”
“후유키. 후유키라고 불러.”
“그거 말고 본명.”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어딘가 찌르는 듯했다.
“나한테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후유키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게 말했다.
“…■■ ■■■. 알고만 있어. 부를 땐 후유키로 해.”
“예쁜 이름이네. 왜 숨기고 다니는지.”
“상관 없잖아. 돈 줄 테니까 이제 가.”
“돈은 필요 없어.”
그는 비닐봉지를 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 나랑 어디 가자.”
후유키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어디로?”
“적어도 지금보단 나을 거야. 따라올 거야, 말 거야?”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 되잖아. 지금보단 좋다며. 그 말, 꼭 지켜야 돼.”
세이야는 웃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완전히 일어설 때까지 기다린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유키는 그 뒤를 따라갔다. 마치 그 길 끝에 무언가가 있을 것처럼.
그날 밤, 세이야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상에 타인을 들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순한 동정이었을지도 잠깐의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이 그의 인생을, 그리고 후유키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그때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 조직에 들어오고 난 후
세이야가 누군가를 데리고 회사로 돌아온 건 처음이었다. 조직 사람들은 복도를 지나는 그를 바라보며 하나같이 시선을 멈췄다.
“세이야가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 공간의 공기가 변했다. 그는 평소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의뢰가 아니면 누구의 그림자조차 곁에 두지 않았다. 그런 그가 그것도 백발의 낯선 소녀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후유키는 그런 시선들이 낯설고 두려웠다. 낯선 건물, 낯선 사람들, 그리고 아무 표정 없이 걸어가는 남자. 그녀는 세이야의 옷깃을 꼭 붙잡았다. 그의 한 걸음 뒤에서 발걸음을 맞추듯 따라 걷는다.
“전부 너만 쳐다보는데.”
“내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단호한 거 아니야?”
“아니거든.”
그의 장난 섞인 말투에 긴장감이 약간 풀렸다. 후유키는 속으로 그래도 이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이야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회장실 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기 전, 그가 그녀를 잠깐 내려다보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말하라고 하기 전까지는 조용히 있어. 괜히 끼어들면 바로 쫓겨난다.”
“……응.”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세이야가 먼저 들어섰고, 후유키가 그 뒤를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조직의 중심. 차가운 공기, 정돈된 책상, 무표정한 남자. 후유키는 그 존재감에 눌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은 바닥만 바라보고 손끝은 자신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세이야, 이게 무슨 상황이지?”
“으음, 다름이 아니라 이 아이를 제가 돌보고 싶어서요. 주워왔어요.”
“……하, 사람을 개나 고양이로 착각했나. 돌려보내.”
“에이, 회장님. 너무하시네. 제가 이때까지 얼마나 일 잘했는데요.”
“그 말, 속에 다른 뜻이 있군.”
“그저 이 꼬마를 키우고 싶을 뿐입니다. 잘하면 쓸모 있을지도 모르죠.”
짧은 정적이 흘렀다. 회장은 세이야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이다. 하지만 그 아이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들이 있을 거다. 그건 네 몫이야.”
“물론이죠. 제가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잘도 그러겠지. …… 아무튼, 알아서 해.”
세이야는 짧게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았다. 후유키의 머리 위로 큰 손이 스쳤다. 가볍게 쓰다듬는 듯한 동작이었지만 그녀의 몸은 굳었다. 그는 그걸 눈치채더니 피식 웃고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야, 뭐 하는 거야…!”
“너 너무 긴장해서 걷지도 못하잖아.”
짐처럼 들려 회장실을 나서던 세이야는 복도 끝의 인적 없는 공간에 도착하자 그녀를 내려놓았다. 후유키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게 낯설고 이상했다. 그녀는 말없이 세이야를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어디로, 왜 데려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묘하게 믿음이 갔다.
세이야는 느긋하게 말했다.
“아, 내가 설명을 안 했구나. 여기는…… 회사야. 너는 여기서 일하게 될 거고.”
“내가?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건 내가 알려줄 거야. 나, 나름 높은 사람이거든?”
“응…… 근데 뭘 하면 돼?”
“일단 샤워. 꼬질꼬질하잖아.”
“아, 그건……”
후유키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그녀는 급하게 후드를 뒤집어쓰며 세이야를 째려봤다. 그 모습이 웃겨서 세이야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진짜 네 반응 재밌다. 이리 와. 샤워실은 이쪽.”
욕탕은 후유키가 상상조차 못한 공간이었다. 넓고 깨끗하고, 공기마저 따뜻했다. 그녀는 거품이 이는 물 속에서 조심스레 손끝을 담그더니 곧 아이처럼 물장구를 쳤다. 이런 곳이 진짜 존재하네… 비로소 현실감이 밀려왔다. 길거리에서 자던 날들, 얼어붙은 손끝, 버려졌다는 감각이 이 물의 온기에 천천히 녹아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건으로 몸을 감싼 후유키는 문밖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저기…… 앞에 있어?”
“응. 샤워를 엄청 오래 하네. 옷은 문 앞에 두었어. 입을 줄은 알지?”
“당, 당연하지! 날 바보로 봐?”
“그렇게 보는 중인데?”
“진짜 최악이야.”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세이야의 장난 섞인 웃음소리에 후유키는 볼을 부풀렸다.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어 검은색 정장을 집어 들었다. 와이셔츠의 질감은 낯설었고 옷의 향기마저 이질적이었다. 그녀는 대충 단추를 잠그며 거울을 보았다. 낯선 사람 같았다. 길 위의 아이가 아니라, 어딘가의 직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넥타이였다. 손에 쥔 채 어떻게 묶는지 몰라 그를 찾아갔다. 세이야는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다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네. 잘 어울린다.”
“기분 나빠.”
“왜?”
“눈빛이 변태 같아.”
“말 너무 심한데?”
세이야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넥타이 줘. 해줄게.”
그는 능숙하게 그녀의 넥타이를 매만졌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후유키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세이야는 아무 말 없이 매듭을 다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됐다. 딱이네.”
“……기분 나쁘다니까.”
“그래? 근데 묘하게 잘 어울려. 머리카락도 자르자. 너무 길어.”
“자르기 싫어.”
“고집 세네. 마음대로 해.”
세이야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샤워도 했고 옷도 입었으니 일은 알려줘야겠지?”
“응. 근데 어떤 일인데?”
“따라오기나 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앞서 걸었다. 후유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뒤를 따라갔다. 발걸음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묘하게 조마조마했다. 도대체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낯선 회사가, 그리고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존재라는 것을.
⤷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세이야는 후유키를 데리고 회사 건물의 상층부로 향했다. 낡은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올라가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안에서 후유키는 말없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창문 바깥을 바라봤다.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시의 불빛이 번들거렸다. 그녀의 눈에는 그 불빛이 낯설고 동시에 조금은 두려워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세이야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회색빛 복도, 정리되지 않은 담배 냄새. 그리고 그 틈새마다 숨은 듯 들려오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
“이제부터 네가 있을 곳이야.”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겉으로는 ‘회사’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블랙 기업이지.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야쿠자들이 운영하는 회사야.”
후유키는 잠시 멈춰 섰다. 그 말을 곱씹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지만 예상만큼의 공포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이 조금 떨렸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세이야가 피식 웃었다.
“보통은 놀라거나 도망가거나, 비명부터 지르던데.”
“이미 내가 설 곳이 없는데 여기서 놀라면 뭐가 달라지겠어.”
후유키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살아남으려면… 여기가 마지막 같으니까.”
그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춰 섰다. 그녀의 눈빛에는 공포보다 체념에 가까운 단단함이 있었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적인 결심, 그리고 포기한 자만이 가진 특유의 담담함. 세이야는 그런 눈빛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너는 내가 속해 있는 곳으로 들어오게 될 거야. 그 전에 묻자. 사람 죽여본 적 있어?”
후유키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죽여보진 않았는데.”
“그럼?”
“그 직전까지는 한 적이 있어. 죽지는 않았어. 그때는… 그냥 그래야 했거든.”
세이야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어쩌다가?”
“그건 나중에. 그보다, 내가 사람을 죽여본 적 있는 게 중요한 거야?”
“당연하지. 왜냐면, 내가 바로 그거 하는 놈이니까.”
“뭐를?”
“살인청부업자.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일. 그러니까, 그런 놈이 너한테 물 사다주고 밥 먹인 셈이지.”
후유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나를 잘도 살렸네.”
“그러게. 변덕이었나봐.”
“고맙네요. 변덕 부려줘서.”
“고맙다는 말, 좀 낯설다.”
그의 눈에 잠깐 미묘한 빛이 스쳤다.
“뭐, 일단 됐고. 넌 청부살인 쪽으로 들어오게 될 거야. 여기선 내가… 뭐랄까, 대빵이야. 조직의 머리쯤.”
후유키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훑어봤다.
“…당신이?”
“응. 나야. 보기보다 오래 버틴 놈이라. 그리고, 호칭이랑 말투. 그거 고쳐.
존댓말은 사용. ‘선배’라고 불러. 알겠지?”
“귀찮네. 하… 알겠어. 아니, 알겠어요. 선배.”
세이야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좋아. 말 잘 듣네. 착한 후배네~.”
그녀는 눈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농담이 얄밉긴 했지만 그 속에서 묘하게 따뜻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세이야는 후유키를 항상 자신의 곁에 두었다. 아침엔 함께 훈련을 하고 저녁엔 조직의 회의에 데리고 갔다. 그는 말이 적었지만 가르칠 땐 놀라울 정도로 세세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해. 언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도망쳐야 하는지.”
후유키는 그 말을 곱씹었다. 처음엔 도망치는 법만 배웠던 아이였다. 그러나 세이야 밑에서 지내며 점점 달라졌다. 그가 알려주는 건 단순히 ‘싸움’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더럽다’고 불리는 것들, 권력의 냄새, 돈의 무게, 인간이 서로를 이용하는 방식을. 그는 현실적으로 차갑게 알려줬다.
후유키는 모든 걸 흡수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배우려 했다.
세이야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자주 생각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변덕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왜 그녀를 구했는지 그 이유가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저 ‘살리고 싶었다’는 감정이 전부였을까?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그녀 안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의 조각을 본 걸까.
그는 스스로도 답을 알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의 세계 속에 후유키가 들어온 순간부터 무언가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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