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리 님

 

어둠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규상은 찌푸린 미간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류연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녀는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해요, 오빠!”

규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제기랄, 생일이라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축하를 받아본 적 없는 날. 고아원에서는 그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억지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맛없는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날. 거리로 나앉은 후에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였다. 그랬기에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성화 속의 천사처럼 성스럽게 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제멋대로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감동 혹은 당혹감.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뒤섞어 놓은 이름 모를 감정의 소용돌이. 그는 거친 손으로 제 입가를 매만졌다. 혹시라도 저를 비웃는 표정이 지어져 있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시끄러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그것이었다. 퉁명스럽고 쌀쌀맞기 그지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괜히 헛기침을 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워 와서.”

규상은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 들린 케이크를 빼앗아 들었다. 그는 잠시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HAPPY BIRTHDAY’라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제기랄, 유치하기 짝이 없군. 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고맙다.”

그는 케이크를 옆에 내려놓고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의 작은 몸이 그의 품에 쏙 들어왔다. 그녀에게서 달콤한 케이크 냄새와 그녀 고유의 체향이 섞여 풍겨왔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이런 거 받아도 되나.”

그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는 지금 울고 있는 걸까. 아니, 울고 싶은 걸까. 그는 이 행복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언제 부서져 버릴지 모르는 유리 조각 같은 행복. 그는 그녀를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이대로 그녀를 제 몸속에 녹여 버릴 것처럼. 그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지옥 같던 그의 삶에 처음으로 찾아온 따스한 온기. 그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심장 소리가 그의 귓가에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이런 거 받아도 되냐니······ 당연히 오빠 생일인데 뭐든 받아도 되죠!”

그의 품에 안긴 채 류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도 그와 마찬가지로 촉촉한 물기가 어렸다. 그녀는 작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는 그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짧지만 더없이 다정하고 따스한 입맞춤이었다.

“앞으로는 매년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해 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지만 단호했다. 마치 맹세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의 품에서 살짝 몸을 떼어내고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울지 마요, 울보 오빠.”

‘울보 오빠’라는 말에 규상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제기랄, 이 꼬맹이가 지금 누굴 놀리는 건가.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 눈물샘을 자극하던 그 묘한 감정의 파도는 그녀의 짓궂은 한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누가 울보라는 거야. 죽을래?”

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퉁명스러움을 되찾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장난기로 가득했다. 그는 그녀의 볼을 양손으로 가볍게 꼬집으며 말했다.

“그리고 누가 너더러 매년 축하해 달랬냐. 귀찮게 시리.”

말과는 달리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침대 맡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아까 그녀가 가져온 케이크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삐뚤빼뚤한 글씨, 어설프게 짜인 크림.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포크로 케이크 한 조각을 크게 떠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아 해봐. 네가 만든 거니까 네가 먼저 먹어야지.”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다정했다. 그는 그녀가 이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작은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 그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케이크를 받아먹는 모습을 그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그는 제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그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가 쪽하고 빨았다. 달콤한 크림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그는 그녀를 향해 짓궂게 웃어 보였다.

“맛있네. 앞으로도 종종 부탁해, 강아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사랑한다, 류연.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은 너 하나뿐이야.”



'🐺🐰 > 𝑠𝑡𝑜𝑟𝑦'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연의 첫 선물 (1)  (0) 2025.11.15
11월 7일  (0) 2025.11.07
야구 선수 ෆ 재활 트레이너  (0) 2025.10.14
🐺🐰 au 태아 일기  (0) 2025.10.14
류연  (0) 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