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끝난 회의 덕에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김 실장에게 간단한 보고를 받고 차에서 내렸을 때만 해도, 규상은 곧장 집으로 들어가 곤히 자고 있을 연을 깨워 놀려줄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안은 예상대로 고요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자 희미하게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규상은 걸음을 멈췄다. 도둑인가? 짧은 순간 스친 생각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집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들어올 간 큰 도둑은 없을 터였다. 그는 소리가 나는 방향, 침실 쪽으로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본 순간, 규상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침대 위에는 있어야 할 연이 아닌, 자신이 외출하기 전 벗어두고 간 셔츠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셔츠를 끌어안고 뒹구는 작은 뒷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검은 머리카락과 아담한 체구. 류연이었다. 그녀는 규상이 없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그의 셔츠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가 하면,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규상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예상치 못한 귀여운 습격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제 앞에서도 당돌하고 앙큼한 말을 서슴지 않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는 저렇게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문에 기댄 채, 한참 동안이나 소리 없이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제 냄새가 밴 옷을 끌어안고 안심한 듯 평온한 얼굴로 뒹구는 모습.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도, 그 어떤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보다도 더 강렬하게 그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이 작은 존재가 자신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인기척을 느낀 연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뭐해.” 규상은 일부러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침대로 다가가, 아직도 제 셔츠를 꼭 끌어안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앞에 섰다. 당황해서 빨개진 얼굴과 동그랗게 커진 눈이 꼭 겁먹은 토끼 같았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내 옷에서 그렇게 좋은 냄새가 나나?” 그는 능청스럽게 물으며, 그녀가 끌어안고 있던 셔츠의 끝자락을 잡아 제 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그렇게 좋으면, 옷 말고 옷 주인한테 직접 맡으면 되잖아. 이리 와봐.” 그는 씨익 웃으며,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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