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끼 발바닥 죠아혀?

 
[ 류연 ]
 
/)/)
(•ω•) 토끼 발바닥 죠아혀?
   /)/)
( •ω•ฅ) 하나?
    /) /)
(ฅ•ω•ฅ) 두개?
    /) /)
(ฅ・᷄ὢ・᷅ฅ)  두개론 만족 못혀?
    /) /)
(ฅ•̀∀•́ฅ)✧ 이제 만죠카지?!
(ฅ      ฅ)
(ฅ      ฅ)
(ฅ      ฅ)
(ฅ      ฅ)이건 토끼가 아니자나...
 
 
[ 윤규상 ]
어. 존나 좋아하는데.
근데 사진으로 보니까 별로네. 진짜 만져봐야 알 것 같은데.
집에 토끼 한 마리 키우잖아. 그거 만지면 안 되나.
 
기다려. 오빠가 곧 갈게. 가서 진짜 토끼 발바닥이 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사무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서류를 넘기던 윤규상은, 갑작스러운 휴대폰 진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또 김 실장의 시답잖은 보고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무심하게 화면을 확인한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액정을 가득 채운 것은 빼곡한 서류 대신, 웬 정체 모를 토끼 이모티콘의 향연이었다. ‘토끼 발바닥 죠아혀?’ 처음 보는 해괴한 맞춤법과 뜬금없는 질문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건 또 무슨 유치한 장난인가.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스크롤을 내렸다. 하나? 두 개? 두개론 만족 못 혀? 장난은 점점 기괴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토끼 발바닥이 두 개, 네 개, 여섯 개… 끝도 없이 늘어나는 모습은 귀엽다기보다는 징그럽기까지 했다. 마지막 문장은 가관이었다. 이건 토끼가 아니자나… 제 할 말을 빼앗긴 기분에,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조용한 사무실에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변에서 일하던 부하들이 흠칫 놀라며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을 웃던 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슥 닦아내고 답장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 귀엽고도 멍청한 생명체를 대체 어쩌면 좋을까. 토끼 발바닥이 좋냐니.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피식 웃으며 자판을 두드렸다. “어. 존나 좋아하는데.” 일단 긍정으로 답했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이것일 테니. 하지만 이걸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 깜찍한 도발에 그대로 넘어가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문장을 이어나갔다. “근데 사진으로 보니까 별로네. 진짜 만져봐야 알 것 같은데.” 그는 제 의도를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토끼 발바닥이 아니라, 토끼 같은 너를 만지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마지막 문장을 추가했다. “집에 토끼 한 마리 키우잖아. 그거 만지면 안 되나.” 문자 메시지 너머로 당황할 그녀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아마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뻐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토끼가 아니자나…’ 라는 마지막 문장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 순진한 아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보낸 걸까. 단순히 저를 웃게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로 토끼 발바닥에 대한 제 취향이 궁금했던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제 머릿속이 온통 그녀 생각으로 가득 차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서류 따위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빨리 퇴근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가서 이 사랑스러운 토끼를 품에 안고 마음껏 괴롭혀주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그녀가 보낸 엉망진창 토끼 이모티콘을 훑어보았다.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걸 보내놓고 무슨 반응을 기대했을까.

그는 짧게 고민하다가, 다시 답장을 보냈다. “기다려. 오빠가 곧 갈게. 가서 진짜 토끼 발바닥이 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그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마 이 메시지를 받으면, 그녀는 더 이상 시답잖은 토끼 타령은 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 곧 닥쳐올 미래를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있거나, 혹은 은밀한 기대를 품고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 어느 쪽이든 흥분되는 상상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빠르게 저물어가는 저녁 하늘을 보며, 그는 오늘 밤이 유난히 길어질 것 같다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서둘러 책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지루한 서류 작업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예측 불가능한 매력으로 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 토끼를 만나러 가는 일이었다.


 

2. 저기요저기요

 
 
[ 류연 ] 
.  _
  /~ヽ
 (。・0・) 저기요저기요··· 
 ゚し-J゚

  _
  /~ヽ
 (。・o・) 보고 싶어요
 ゚し-J゚

  _
  /~ヽ
 (。・-・) 어디에 있나요♡
 ゚し-J゚

 
[ 윤규상 ]
니 심장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을 데구루루 굴리며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빌어먹을 서류 작업은 오늘따라 유난히 진척이 없었다. 집중하려 애를 써봐도 자꾸만 아까 보았던 멍청한 토끼 발바닥과 그걸 보냈을 녀석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던 찰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또 그 녀석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화면을 켜자 예상대로였다. 이번에는 웬 곰인지 뭔지 모를 동물이 동그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저기요저기요… 보고싶어요… 어디에 있나요♡.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애교와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제기랄 사람 미치게 하는 데는 아주 선수다.

 
그는 짧게 고민했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의 애간장을 제대로 녹일 수 있을까. ‘나도 보고 싶다’ 라거나 ‘사무실이야’ 같은 평범한 대답은 성에 차지 않았다. 조금 더 특별하고 더 윤규상다운 방식으로 그녀를 흔들어 놓고 싶었다. 그는 자판을 누르려던 손가락을 멈추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이 보였다. 퇴근 시간이 머지않았다는 신호였다. 그는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그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이모티콘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 결정했다. 그는 짧고 굵게 그러나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한 문장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니 심장." 그는 딱 세 글자만 보낸 후 휴대폰을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아마 이 문자를 받은 그녀는 한동안 이게 무슨 소리인지 골똘히 생각하겠지. 그리고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 얼굴을 붉히거나 혹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네가 어디에 있든 내 마음속에 있다’는 식의 닭살 돋는 고백이 아니었다. 이건 경고였다. 네 심장을 가지러 가고 있다는 곧 네 앞에 나타나 너를 통째로 집어삼킬 거라는 포식자의 선전포고.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는 ‘내 토끼’라는 이름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겉옷을 챙겨 입으며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김 실장에게 나직이 말했다. "나머진 내일 처리하고 먼저 퇴근한다." 김 실장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훨씬 가볍고 빨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조급하게 느껴졌다. 그는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차 키를 손가락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오늘 밤 그녀는 꼼짝없이 제게 잡히게 될 것이다. 그녀가 보낸 귀여운 이모티콘과 애교 섞인 메시지들은 결국 덫에 걸린 작은 동물의 필사적인 발버둥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는 그 덫을 놓은 유일한 사냥꾼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익숙하게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맹수의 울음소리 같은 엔진음이 낮게 깔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찍힌 화면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그제야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그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길이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수화기에 대고 나직하게 그러나 상대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문 열어놔. 지금 니 심장 훔치러 가는 중이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과 함께 숨길 수 없는 욕망과 소유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오늘 밤 그 작은 토끼는 제 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3. 들었다 놨다

 
[ 류연 ]
 
(ˊᗜˋ)내 마음을
٩(ˊᗜˋ)و들었다
(ˊᗜˋ)놨다
٩(ˊᗜˋ)و들었다
(ˊᗜˋ)놨다
٩(ˊᗜˋ)و들었다놨다헤이
 
 
[ 윤규상 ] 
거기 가만히 있어. 금방 간다.


그의 눈썹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해이? 그는 류연이 보낸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이번에는 팔다리가 달린 이모티콘이 방정맞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제 감정을 멋대로 재단하는 그 문장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동시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 마음이 그렇게 쉽게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물건이었던가.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작은 계집애는 정말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 심장을 롤러코스터에 태웠다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심란했다. 저런 유치한 이모티콘 하나에 온 신경이 쏠리고,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버린 제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존재가 기이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답장을 보내려다,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메시지로 투닥거리는 것은 이제 질렸다. 직접 얼굴을 보고 반응을 살피는 편이 훨씬 재밌을 터였다. 그는 간결하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거기 가만히 있어. 금방 간다. 그는 더 이상의 답장은 기다리지도 않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김 실장이 당황한 듯 물었지만,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짧게 용건만 말했다. 급한 볼일이 생겼다. 뒤는 알아서 처리해. 그는 재킷을 챙겨들고 망설임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경쾌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를 어떻게 놀려줄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고? 좋다. 그렇다면 진짜로 ‘들었다 놨다’ 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는 차에 시동을 걸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 그녀는 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의 머릿속은 온갖 장난스러운 계획으로 가득 찼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마 아무것도 모른 채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겠지. 그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대해야 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대로 그녀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았다. 왜 벌써 왔어? 그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아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녀의 위로 올라타, 양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고정시켰다.

그녀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누가 함부로 남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라고 했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험하게 울렸다. 네가 시작한 장난이야. 그러니까 끝은 내가 본다.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저항할 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도망갈 곳 없이 제 품에 갇혀 버둥거리는 작은 몸을 느끼며,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 그녀에게 ‘들었다 놨다’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방식으로.


 

4. 주먹밥!

 
[ 류연 ]

.  |``--,...     `` * |
  i ヽ           :;
  \ 彡           ミ
  〉    ●  .  ●   ミ
  彡    ``   人      ミ
  彡:                ミ
,︵I:       つ🍙⌒  

주먹밥!


[ 윤규상 ]
이게 뭐야. 너 또 휴대폰 가지고 이상한 짓 했지.
근데… 좀 귀엽긴 하네. 네가 만들어서 그런가.
주먹밥. 맛있겠다. 네가 만들어주면 더 맛있을 텐데.

기다려. 지금 갈게. 가서 주먹밥 말고, 너부터 먹을 거니까 각오해.


휴대폰이 또 한 번 손안에서 웅, 하고 울렸다. 이번엔 또 무슨 기상천외한 짓을 벌였을까. 반쯤은 기대하고, 반쯤은 두려운 심정으로 화면을 들여다본 윤규상은 저도 모르게 풉,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아스키 아트로 만들어진 고양이 비슷한 무언가였다. 동그란 눈 두 개에 심플한 입 모양,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손에 떡하니 들고 있는 주먹밥까지. 이건 누가 봐도 제 연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제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웃겨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심장 한구석이 뻐근하게 아려왔다. 이런 걸 만들어서 저에게 보낼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귀여운 짓만 배워온 건지. 그는 화면 속의 멍청해 보이는 고양이와 그 밑에 큼지막하게 쓰인 ‘주먹밥!’이라는 단어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참 동안이나 미소를 지었다. 사무실의 삭막한 공기가 그녀가 보낸 문자 하나로 단숨에 분홍빛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주먹밥!’이라니. 꼭 제 앞에다 주먹밥을 내밀며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답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장난스럽게 받아쳐 줄까, 아니면 이 귀여운 정성에 감동한 티를 팍팍 내줘야 할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다. 이따금씩 이렇게 순수하게 제 마음을 표현해 주는 그녀에게 저 역시 솔직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천천히 자판을 눌러 답장을 써 내려갔다. “이게 뭐야. 너 또 휴대폰 가지고 이상한 짓 했지.” 일부러 퉁명스러운 척 문장을 시작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행을 바꾸어 다음 문장을 이었다. “근데… 좀 귀엽긴 하네. 네가 만들어서 그런가.” 쑥스러움에 목덜미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귀엽다’는 말은 제 평생 입에 담아본 적 없는 단어였지만, 그녀 앞에서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장을 하나 더 추가했다. “주먹밥. 맛있겠다. 네가 만들어주면 더 맛있을 텐데.”

문자를 보내고 나자,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 스스로가 생각해도 조금은 느끼한 멘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녀가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그게 설령 맛없는 주먹밥일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일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보낸 문자와, 그녀가 보낸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화면 속 고양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보았다. 마치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이 작은 휴대폰 화면 하나로 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그녀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조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험악한 상황도 저를 이렇게까지 흔들어 놓지는 못했는데. 고작 이모티콘 하나에 온종일 헤실거리는 제 모습이 낯설면서도 싫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지금 당장 그녀를 보러 가야만 했다. 그는 김 실장에게 짧게 ‘먼저 들어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망설임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그는 그녀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기다려. 지금 갈게. 가서 주먹밥 말고, 너부터 먹을 거니까 각오해.” 악셀을 밟는 그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 저녁 메뉴는 정해졌다. 그녀가 만들어주는 따뜻한 주먹밥, 그리고 디저트는… 제 사랑스러운 작은 토끼. 그는 입맛을 다시며,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도시의 도로를 질주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 설레는 감정의 이름을, 그는 여전히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쑥스러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남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5. 도랏나

[ 류연 ]

.∧_∧
(。・ω・。)つ━☆☆*。
⊂   ノ    ☆☆
 し-J   °。+ * 。
         .☆
          。゚゚・。・゚゚。
          ゚도랏나 。゚
           ゚・。・゚


[ 윤규상 ]
(답 없음)



귓가를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윤규상은 무심코 화면을 켰다. 그는 피식 웃으며 메시지 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액정 화면에는 요술봉을 흔드는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도랏나’라는 세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의심했다. 제가 뭘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았지만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도랏나. 감히 저한테. 그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맹랑한 것.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조금 전까지 이 귀여운 토끼를 어떻게 구워삶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던 제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감히 누구한테 ‘돌았냐’는 말을 쓰는 건지.

분노보다 먼저 치밀어 오른 것은 황당함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려 애썼다. 화를 내야 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웃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겁도 없이 이런 메시지를 보낸 류연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마 제 딴에는 이게 엄청난 용기이자 귀여운 반항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톡 쏘는 맛이 있는 작은 고양이 같다고나 할까. 발톱을 세우고 하악질을 해봤자 결국은 제 손아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었다.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지금 당장 이 겁 없는 고양이를 잡으러 가야 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의 머릿속은 온통 류연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도랏나.’ 그 세 글자가 끈질기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에 도착하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일단 문을 열자마자 벽으로 밀어붙이고 키스부터 퍼부을까? 아니면 아무 말 없이 목덜미를 잡아채 침실로 끌고 가야 하나? 여러 가지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어느 것 하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단순히 겁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감히 누구에게 함부로 말을 내뱉은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줘야 했다. 다시는 이런 맹랑한 짓을 꿈도 꾸지 못하도록 몸과 마음에 똑똑히 새겨줄 필요가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으며 그는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성을 잃고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부서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니까. 하지만 동시에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을 필요도 있었다. 그는 맹세했다. 오늘 밤 그녀는 제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못했다고 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제게 이런 무례한 말을 내뱉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차에서 내렸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그의 눈빛은 먹잇감을 눈앞에 둔 굶주린 늑대처럼 차갑고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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