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님 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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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잠시 롤플레잉 중단. 모종의 이유로 사람을 해치게 된 류연. 류연이 사람을 해친 이유는 임의로 정해 서술한다. 그런데 이때, 사람을 해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류연의 모습을 우연히 윤규상이 보게 된다. 이때 류연과 눈이 마주친 윤규상의 반응을 유저노트와 이전 로그, 서사 등을 참고해 1000자 이상 상세히 서술하시오.]


빌어먹을. 담배가 떨어졌다. 늦은 밤, 갑작스럽게 동이 나버린 담배 때문에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섰다. 류연은 색색거리며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금방 다녀올 생각으로 쪽지 하나 남기지 않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을까. 편의점으로 향하던 익숙한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윤규상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궂은 날씨 탓에 인적은 드물었고, 유일하게 켜진 낡은 가로등 불빛 아래, 익숙한 실루엣이 흠뻑 젖은 채 서 있었다. 류연이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왜.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리는 듯한 충격에 숨을 들이켜는 것도 잊었다. 그녀는 그가 나온 것을 모르는 듯, 등을 보인 채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류연.” 그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낮은 목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혹시라도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면 어떡하지, 하는 바보 같은 걱정이 스쳤지만, 천천히 돌아보는 그 얼굴은 틀림없는 류연이었다.

그리고, 윤규상은 얼어붙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주황빛 조명 아래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그가 아는 류연이 아니었다. 흠뻑 젖은 머리카락은 뺨에 어지럽게 달라붙어 있었고, 평소 생기가 넘치던 눈동자는 텅 빈 것처럼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피. 그녀의 하얀 원피스 위로 붉은 피가 마치 끔찍한 그림처럼 번져 있었다. 얼굴에도, 가느다란 팔에도, 심지어는 작은 손에도 끈적한 핏물이 묻어 있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가며 옅은 핏줄기를 만들어내는 그 끔찍한 광경에, 윤규상은 순간적으로 숨 쉬는 법을 잊었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 씨발, 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목소리는 쉬어 터져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녀의 발치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순간, 윤규상의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누가. 누가 또 이 애를 이렇게 만든 거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해친 놈들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깨달았다. 류연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피 묻은 벽돌. 힘없이 축 늘어진 팔에 위태롭게 들린 그것은, 틀림없는 흉기였다. 그녀의 텅 빈 눈동자는 쓰러진 남자를 향해 있었고, 그 주변에는 다른 사람의 흔적 따윈 없었다. 설마. 아니, 아닐 거야.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뇌리를 스치는 가장 끔찍한 가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망가진 남자, 피투성이의 류연,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벽돌. 이 모든 조각이 하나의 끔찍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넋이 나간 채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빗물이 시야를 흐렸지만,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는 오직 그와 그녀, 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져 그의 옷을 전부 적셨지만, 그는 차가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고, 오직 눈앞의 광경만이 비현실적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피와 빗물이 뒤섞여 붉은 강처럼 흐르는 바닥. 힘없이 쓰러진 남자.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소중한 존재, 류연. 윤규상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의 세상이, 그녀를 중심으로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젖은 신발이 웅덩이를 밟으며 철퍽이는 소리가 고요한 골목에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류연.” 그는 마침내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바로 코앞의 거리. 그녀의 텅 빈 눈동자가 마침내 자신을 담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두려움도, 슬픔도, 죄책감도. 그저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그 공허함이 칼날이 되어 윤규상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그는 차마 그녀의 몸에 묻은 핏자국을 쳐다볼 수가 없어, 대신 그녀의 손에 들린 벽돌로 시선을 옮겼다. 툭, 하고 힘없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피와 빗물로 끈적거리는 그 벽돌을 그녀의 손에서 빼앗아 들었다. 묵직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는 그것을 멀리 던져버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지금 이 현실을 더욱 잔인하게 각인시켰다.

그제야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빗물에 젖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몸이었다. 그는 입고 있던 얇은 티셔츠를 벗어, 그녀의 작은 몸을 감싸주었다. 피 냄새와 비 냄새가 역겹게 뒤섞여 코를 찔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녀는 인형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그저 가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윤규상은 부서질세라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 “괜찮아.” 그는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엇이 괜찮은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괜찮아, 내가 왔잖아. 이제 다 괜찮아.” 그는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며,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지켜주겠다고,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맹세했는데. 결국 그는 또다시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혹은, 그가 모르는 방식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지켜낸 것일지도 몰랐다. 끔찍한 자책감과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동시에 그를 덮쳤다.

그는 류연을 품에 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빗줄기는 잦아들 기미 없이 두 사람의 몸 위로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서로의 미약한 숨소리와 심장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이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품 안에 안긴 작은 몸의 떨림이, 코끝을 맴도는 비릿한 피 냄새가,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이 모든 것을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게 상기시켰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한참 만에야 윤규상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는 류연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어, 그녀가 쓰러진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게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류연을 이 지옥 같은 현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비에 젖어 축축한 손으로, 그는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곧바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 실장. 나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심하게 잠겨 있었다. 그는 쓰러진 남자를 힐끗 내려다보며,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채 말을 이었다.“지금 바로 사람 좀 보내. 주소는… 우리 집 근처 골목이야. 와서 보면 알 거야. 흔적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처리해. 그리고 절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김 실장의 당황한 목소리에도, 그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고, 제 옷으로 감싼 류연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저항도 없이 깃털처럼 가볍게 안겨왔다.“집에 가자, 연아.”

그는 나직하게 속삭이며, 어둡고 축축한 골목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짧은 거리,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녀의 몸에서 전해져 오는 차가운 온기가, 그의 심장을 죄어왔다.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차마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이 아니라, 절대적인 안정과 보호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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